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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주예법(飮酒禮法) (2)
관리자
2012/06/26 14966

 음주예법(飮酒禮法) (2)



나. 향음주례(鄕飮酒禮)(강대형, 1979)

 향음주에는 육서(六書)(관례 혼례 상례 제례 상견례 향음주례)의 하나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하나인 『한서(漢書)』 『예기(禮記)』(이상옥 역 1985 : 243~261)에 따른 옛 선비들의 음주 예절로서 구한말까지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 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던 것이다.

 옛 선인들에게 술이란 천지 귀신에게 제사지낼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숭고한 음식이었다. 늙고 병든 이의 혈기를 돋구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약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술을 한갓 환락의 도구나 객기의 근본으로 오용하여 질펀히 마시고 광태(狂態)를 자행한 끝에 가산을 탕진하고 부모를 섬기지 않고 건강을 해치는 사회 문제를 일으키자 성현들이 이를 막기 위해 향음주례를 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주인은 술잔 하나로 술을 돌려가며 손님에게 권해야 되는데 이는 주석총화(酒席總和)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자기가 술을 마시지 않고 상대편에게 권하는 것은 큰 실례로 여겼다. 왜냐하면 취하는 술을 자기는 마시지 않고 상대편에게만 일방적으로만 권하는 것은 벌주를 주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이 향음주는 일제의 침략을 받은 뒤에는 의병 모의를 하는 모임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일제는 우국지사를 모으는 방법으로 이 의식을 이용하는 것을 적발, 그 후 이 의식 거행을 금지해 버렸다.

 그 후 1974년만인 1979년 11월 10일 성균관대학교 명륜당 앞 뜰에서 한국청년유도회(당시 회장 : 서정홍)에 의해 3시간이나 소요되며 재현되었는데 ① 주인이 손님을 청함, ② 손님을 모셔 옴, ③ 손님을 맞이 함, ④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대접함, ⑤ 손님이 주인에게 줄을 권함, ⑥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권함, ⑦ 주인이 여러 손님에게 술을 대접함, ⑧ 주석의 사회자를 세움, ⑨ 차례로 술을 권함, ⑩ 두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술을 권함, ⑪ 축제 음식을 거둠, ⑫ 연회를 함, ⑬ 손님이 돌아가기에 이르기까지 13단계에 걸쳐 거행되었다.

 향음주례의 전통으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우리의 음주예법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서정기 1984).

 술과 음식을 너무 질펀하게 하지 아니하며 안주는 자기의 접시에다 덜어다가 먹었던 것이며 술잔을 돌리되 반드시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서 술을 채워 권하여 존경심과 친밀감이 전달되도록 한다. 술좌석에서 잔이 한바퀴 도는 것을 한 순배(巡杯)라고 하는데, 술이란 대개 석 잔은 훈훈하고 다섯 잔은 기분 좋고, 일곱 잔은 흡족하고 아홉 잔은 지나치므로 일곱 잔 이상은 권하여 돌리지 아니하였다.

 

 다. 회음(回飮)

 우리 조상들의 음주 예절은 두 가지가 있다. 향음주례와 회음(回飮 : 술잔 돌리기)이다. 고려 인종 때에 향음주례를 행하도록 규정을 지은 바 있고(고려대 민속문화연구소 1980), 이조 성종 때에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향음주례에서도 잔 주고 받기가 있었고, 회음의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경주 포석정에는 곡수를 흐르게 하여 술잔을 돌려 마신 신라의 유적이 있어 퇴폐적인 왕실 향락의 방편으로 오해를 받고 있으나 이는 임금이 그가 거느린 신하들과 더불어 공동체 의식을 결속하는 일종의 정신적 계약 행위로서 복합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조선시대 승문원에서 임금에게 문서를 올리는 날에는 임금께서 주식을 내리게 마련이었는데, 그 술을 고령종이라는 큰 술잔에 담아 돌려가며 마셨다 한다. 이러한 관습에 의해 요즈음도 가끔 대포 잔을 돌리며 결속을 다지는 음주 행위가 남아있기도 하다.

 술이란 강제로 권하는 게 아니었으며 권주(勸酒)는 기생이 권주가를 부르며 권하는 특별한 경우라면 술을 받았지만 무작정 마주앉아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은 일본식이었다.

 술을 마시는 데 있어 한국과 일본의 예법은 조금씩 달랐다. 한국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술을 올리는 것을 헌주(獻酒)라고 하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술잔을 내려 주었다. 그래서 일본인 연회석엘 가면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찾아가 술을 간청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관광이다, 상담이다 하여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찾아온다. 그들이 초대받은 자리에서 한국 사람이 먼저 술을 권하면 그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낮게 보는 게 아닌가 하며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이서구․조풍연 대담 1977).

 이런 풍습은 대부분 없어졌다고 하는데, 일본의 잔 주고 받기[헌작(獻酌), 겐샤구]라는 것은 원래 하향, 즉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특별히 내리는 술을 받아 마신 다음에 다시 술잔을 올리는 잔 돌리기이다. 물론 같은 또래끼리도 주고 받기는 하지만 이 때에도 잔 씻기[배세(盃洗), 하이센]라는 게 있어서 형식적이나마 잔을 물에 씻고 돌리게 되어 있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 윗사람에게 다투어 잔을 올리고 윗사람은 잔을 안올리면 불쾌하게 생각하는 수도 있다.

 라. 술 따르는 예의(한국일보 1983.7.13)

 술을 따를 때의 예의에 대해서도 서로 평교(平交)할 수 있는 나이 차가 5살 미만의 처지에는 한 손이 무방하지만, 경어를 쓸 경우에는 반드시 두 손으로 따르고 받아야 된다는 의견도 있다. 도포 등 소맷자락이 긴 한복에서는 겨드랑이를 끌어올리듯 하고, 양복을 입었을 때는 술병을 받쳐드는 것이 바른 자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술병 잡은 오른손의 바닥이 위로 향하게 해서 따르는 것과 왼손으로 따르는 것은 주기 싫은 술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므로 무관한 처지가 아니면 술좌석에서 상대편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행위는 삼가는 것이 좋다.

 여성이 주석에 낄 때(한국일보 1984.8.29)는 일부 양반 사회에서 여러 가지 금기가 있었지만 서민층들은 옛날에도 대체로 자유롭게 마셨다.

 술이 많지 않아 잔치 때나 마셨지만 마시는 이상은 흥겨웁게 잔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성들도 주석에서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으며 여성이 술을 따라 주고 안 따라 주고는 아무런 객관적 기준이 없으며 오직 분위기가 중요하다 하겠다.

 술을 두 손으로 따르는 것은 서양에는 없는 한국의 예절로, 상대방을 공경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므로 나이가 엇비슷하거나 연하라도 상대가 이성이면 공경해 주는 것이 예의이며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마. 술마시는 예의(이훈종 1989)

 약용이라 하여 소화를 돕기 위한 식사 때의 반주(飯酒), 잠이 오라고 마시는 수주(睡酒), 여름철 땀 흘리고 출입하였다 돌아왔을 때의 약소주(藥燒酒) 등은 대개가 상대가 없어 주석 축에는 들지 않는다.

 가장 대견하고 소중한 것은 손님 접대용이니 봉제사, 접빈객(接賓客)은 규모있는 가문의 기본 태도였다. 소동파의 부인처럼 “우리집에 담근지 오래된 말술이 있으니 언제라도 손님이 와도 좋다(我有斗酒(아유두주), 藏之久矣(장지구이), 以待子不時之須(이대자불지수))”하게 되어야 현부인으로 꼽았었다.

 제사 지내는 절차로 볼 때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의 삼헌이 있고, 헌작(獻爵) 때마다 적(炙)을 따로 올리며 마지막 잔을 올리고 나서도 첨작(添酌)하여 더 권한 위에 반합(飯盒)을 열게 되어 있으니 이것이 옛날 가장 정중하게 식사 대접하는 방식의 재현이다.

 성균관의 대제에는 무악(舞樂)이 따르고, 헌작에 앞서 폐백드리는 절차가 있으니. 옛날 옳은 손님 대접에는 선물도 드리고, 음악이나 무용도 곁들여 보여 드려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원 김홍도의 『기로세련계회도(耆老世聯稧會圖)』라는 작품은 개성만월대에서 고로(古老)들을 모시어 연회하는 광경인데 실제의 정경을 여실하게 그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주안상은 각자가 따로따로 받았는데 이것이 옛날의 옳은 격식이다. 그림에는 층계 아래로 손님을 모시고 온 인마(人馬)가 웅성거리는데 손님은 적당한 때 자기의 상을 하인에게 물려 주어 다시 하인들대로 식사토록 했던 것이다. 또한 연회 마당 복판에 준소(樽所)를 차려 놓고 술은 따로 떠서 들고 다니며 돌리는데 이것이 옛날의 옳은 법이다(사진 김홍도의 기도세련계획도).

 주석에는 부자가 한자리에 앉아 마시는 경우가 있다. 하나는 제사 끝난 뒤의 수조(受胙), 곧 제물을 내리어 자손들이 나눠 받는 음복(飮福)자리니 그것이 자손 된 이의 도리였고 이 역시 차례대로 순서를 따라 마시었다. 둘째는 향음주례, 온 동리가 연령대로 순서를 따라 앉아서 또 차례대로 술 마시는 행사니 동리의 협동과 질서를 다짐하는 모임으로서 ‘농가’에는 강신(降神)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우리 나라 초학 교재(初學喬才)이던 『천자문』에는 “현가주연(絃歌酒讌), 접배거상(接杯去觴)”이라고 나와 있는데, 접(接)자에 교(交)자와 같이 주고 받는다는 뜻이 있어, 접배를 잔을 주고 받는다는 뜻으로 해석한 이도 있으나, 꼭 지금과 같이 주고 받고 하는 행동이었는지 밝힐 길이 없다. 거상(擧觴)의 상(觴)이 술잔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설문에 “상(觴), 실일상(實日觴), 허일단(虛日??)”이라 하여 술을 부어 채운 잔이라 잔에 술을 채워 손님에게 드린다는 뜻이지 지금처럼 빈 잔을 주고 주전자를 들어서 부어 채우는 형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석에서는 자연히 대화가 부드럽게 풀리기는 하지만 자칫 감정이 격해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주고 받기에 가장 신경이 쓰인다. 이태백(李太白)의 『춘야연도이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개경연이좌화(開瓊筵而坐花), 비우상이취월(飛羽觴而醉月)”이라는 멋진 문구가 있어 이를 직역한 옛 글에는 “아름다운 잔치가 열리니 꽃들이 앉았고, 술잔을 날리니 달이 취하는 도다”하고 한 데도 있으나 잔이 새처럼 날개가 돋은 형상에 맞춘 표현이지 대각선으로 왔다갔다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또 같은 글에서 “여시불성(如時不成), 벌의금곡주수(罰依金谷酒數)”라 하였는데 동석자 중에서 시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벌로 술을 먹이겠다는 애교있는 어름장이다. 본래 시회에서 모은 작품은 축(軸)으로 꾸며 보관하고 전사(轉寫)하여 나눠 갖는데, 실격 작품은 그 가운데 넣지 않는 것이다.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이다.

 어른을 모시고 술먹는 좌석에서 예절을 두고 『예기(禮記)』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시음어장자(侍飮於長者) 주진즉기(酒進則起) 배수어존소(拜受於尊所) 장자사(長者辭) 소자반석이음(小者反席而飮) 장자거수조(長者擧受釂) 소자불감음(小者不敢飮).”이처럼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실 때는 술잔이 오면 곧 일어나야 하고 존소에서는 절을 하면서 받아야 하고 어른이 마시라고 말씀을 하시면 나이 어린 사람은 뒤로 돌아서 마셔야 하고 어른이 술잔을 들어 올리면 나이 어린 사람은 감히 마시지 못하였다.

 바. 연석(宴席)에서의 습속

 큰상 앞에는 입매상을 차리는데, 몇 잔 반주 끝에 식사를 하게 마련이다. 몸상과 곁상으로 격식을 갖춰, 곁상에 술과 마른 안주, 과실 등을 올려 놓고, 선반주(宣飯酒)가 끝나면 옆으로 밀어내고 몸상을 받아 식사하게 된다.

 예전의 점잖은 분 수연(壽宴)에는 원시에 모두가 차운(次韻)하며 즐겼고 그런 자리에는 영시(詠詩)할 줄 아는 기생을 배좌(陪坐)시켜 그것을 읊게 하여 모두가 음미하였다. 그러니까 시조 형식의 단가를 시조창 이전엔 그 까다로운 가곡으로 불렀고, 고려말에는 그 나름대로 가기(歌妓)가 있어 당시 주객간의 수약을 그 당시 곡조에 얹어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자리는 매우 점잖아서 처음 요리상을 대하여 몇 잔씩이 오가고 나면 잠시 모두 안석에 기대어 물러앉고 기생들은 좌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노래, 소리를 들려 주었다, 물론 가야금이나 춤을 보여 주기도 하였지만, 손님이 직접 부르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특별한 장기를 가진 멋쟁이 손님이 있으면 그들쪽에서 한 곡조 일러줍소사고 청하여 그에 수응해 들려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상 가까이 다가앉아 몇 잔씩을 기울이고 나앉아 가무를 보는 것이 요리집의 풍속이었다.

 다만, 주홍이 어지간히 높아지다 보면 갖가지 주령(酒令)을 내어 억지로 먹이다시피 하는데, 우연성 높은 놀이로 술 먹는 이를 지정하기도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이 특기 자랑(당시 말로 목침(木枕) 돌림)이었는데, 이상하고 야릇한 몸짓을 시켜 벌주는 물론 큰 잔으로 억지로 먹여 괴롭히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 야외에서 놀이

 답답한 실내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기는 즐거움은 또한 격식을 차리니 않고 옷깃을 훌렁 벗어 던져 파탈(罷脫)하고 홀가분하게 놀 수 있어 좋다.

 상차림은 저희들 손으로 해먹지 않는다면 일행의 것을 한 상에 몰아 차려 가자(架子) 틀에 얹어 앞뒤에서 일꾼들이 가마 매듯 메고 내오는 식으로 행하였고, 또 요리집이 생기면서 몇 십원상(十圓床)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교자상에 차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말의 원뜻을 몰라 뒤섞여 앉는다고 교좌상(交坐床)이라고까지 하게 되었다.

 난로회(煖爐會)라고 휘건(揮巾)과 갓두루마기의 방한 차림으로 산정에 모여 앉아 펄펄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마시는 설경 놀이가 있다. ‘벙 거짓골’이라고 꼭 전 있는 모자같이 생긴 무쇠냄비 틀에 활활 핀 화로를 들여 앉히고 국물을 잡아 끓이며, 전으로 고기와 두부를 올려 놓아 익혀 먹고 마지막에 밥이나 국수를 넣어 비벼먹고 일어나는 놀이다.

 강에 배를 띄우고 노는 뱃놀이는 손님이 앉는 좌선에 음식을 만들어 대는 종선이 한짝이 한짝이 되어 강을 오르내리는데 술이 순하여 멋에 겨워 먹다 보면 생각 못한 일 벌어질 수도 있으니 되도록 입에 대기 어려운 독주를 쓴다고 한다.

 아. 성인식과 사발술

 2월 초하룻날을 노비일(奴婢日)이라고 한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는 오랫동안 농삿일이 없어 머슴들은 별로 뚜렷한 일이 없었지만 이 달부터는 농사 준비가 시작되는 시기이니만치 앞일 위하여 위로 겸 노비에게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고 주식을 마련하여 농악을 치며 푸짐하게 즐긴다.

 이 날 아직 장가들지 못한 나이 많은 노총각 머슴에게 큰 사발에 술을 주면서 “고개 돌이키지 말고 먹어라”하고 술을 내린다. 이 술을 마신 머슴은 그로부터 어른과 맞품앗이를 하게 되었다. 소박하나마 일종의 성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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