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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향음주례
관리자
2012/07/27 1995

향음주례[ 鄕飮酒禮 ]

  • 분야

    의례

  • 계절

    겨울(음력 10월)

정의

조선시대 향촌의 선비와 유생(儒生)들이 향교나 서원에 모여 예(禮)로써 주연(酒宴)을 함께 즐기는 향촌의례(鄕村儀禮). 향음주례는 그 고을 관아의 수령이 주인이 되고,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큰 손님으로 모시고 그 밖의 유생들도 손님으로 모셔서 이루어졌다. 향음주례의 목적은 주인과 손님 사이의 예절바른 주연을 통하여 연장자를 존중하고 유덕자를 높이며, 예법(禮法)과 같은 풍속을 일으키는 데 있었다.

유래

『주례(周禮)』의 지관(地官) 향대부조(鄕大夫條)에는 “향학(鄕學)에서 학업을 닦고 난 다음, 제후(諸侯)의 향대부가 향촌에서 덕행과 도예(道藝)를 고찰하여 인재를 뽑아 조정에 천거할 때, 출향(出鄕)에 앞서 그들을 빈례(賓禮)로써 대우하고 일종의 송별 잔치를 베푼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향음주례는 본래 중국 주대(周代)에 향대부가 고을의 인재를 조정에 천거할 때 출향에 앞서 베푼 전송(餞送)의 의례가 전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예기(禮記)』 45편 향음주의에 의하면, “향음주란 향대부가 나라 안의 현인(賢人)을 대접하는 것으로 향음주례를 가르쳐야 존장(尊長)과 양로(養老)하는 것을 알며, 효제(孝悌)의 행실도 따라서 실행할 수 있는 것이고, 귀천(貴賤)의 분수도 밝혀지며, 주석(酒席)에서는 화락하지만 지나침이 없게 되어 연회를 즐기면서도 어지럽지 않게 되고, 자기 몸을 바르게 하여 국가를 편안하게 하기에 족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내용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말에 성리학이 전래됨에 따라 향사례(鄕射禮)와 함께 향음주례에 대한 지식이 이미 알려진 듯하나, 그 진의가 잘 반영된 것으로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 중 향사의(鄕射儀), 향음주의가 있다. 향사의는 오례(五禮) 중 군례(軍禮) 의식으로 “매년 3월 3일(가을에는 9월 9일)에 개성부 및 여러 도(道), 주(州), 부(府), 군(郡), 현(縣)에서 그 예를 행한다.”라고 하였고, 향음주례는 가례(嘉禮)의 하나로서 “매년 맹동(孟冬)에 한성부 및 여러 도, 주, 부, 군, 현에서 길진(吉辰: 길일)을 택해 그 예를 행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향사례는 효제충신하며 예법을 좋아하여 어지럽히지 않는 자(孝悌忠信好禮不亂者) 그리고 향음주례는 나이가 많고 덕과 재주가 있는 자(年高有德及才行者)를 각각 앞세운다고 하였다.
향음주의에 기록된 행례 절차는 고을의 관(官)이 주인이 되어 나이가 많고 덕과 조행(操行)이 있는 사람을 빈(賓)으로 삼아 주탁(酒卓)을 마련하여 읍양(揖讓)하는 예절을 지키며 주연을 베푼다. 주연이 끝나면 사정(司正)이 자리에서 나가 북향하여 서서 말하기를, “우러러 생각건대, 국가에서 옛날의 제도를 따라 예교(禮敎)를 숭상하여 지금 향음주례를 거행하게 되니, 오로지 음식(飮食)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무릇 우리들 어른과 어린이는 각자가 서로 권면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안으로는 규문(閨門)에 화목하고, 밖으로는 향당(鄕黨)에 친밀하며, 서로 훈고(訓告)하고, 서로 교회(敎誨)하여, 혹시 과실과 나태함으로써 그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하라.”라는 서사(誓詞)를 읽었다. 결국 향음주례는 수령이 앞장서서 향중(鄕中)의 유덕자를 골라 베푸는 주연이되, 음주를 즐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례(酒禮)를 통한 예법의 훈련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두 의례는 「오례의」에 규정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성종 때까지도 지방 수령과 감사들이 거의 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이 두 의례를 주목하게 된 것은 성종 초에 중앙에 진출한 김종직(金宗直)과 그 문인(門人), 종유인(從遊人)들이 향촌 질서의 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방도로써 향사례와 향음주례의 시행을 건의하면서부터였다. 이 건의는 두 가지 의례의 담당 기구로 세조 말에 혁파된 유향소(留鄕所) 제도의 부활을 동시에 제기하였다. 이들 사림파의 유향소 복립 운동은 단순한 이전 제도의 부활이 아니라 『주례』의 향사례, 향음주례를 실천할 기구로서 유향소를 거론한 것이다. 두 의례는 각 향촌 사회에서 효제충신하고 연고유덕자(年高有德者)를 각각 앞세워 불효(不孝), 부제(不悌), 불목(不睦), 불인(不姻), 불임휼(不任恤)한 자, 다시 말해서 향촌 질서의 파괴자를 모두 다스려서 궁극적으로는 향촌의 질서를 유교적 윤리관에 입각하여 교화의 방식에 의해 자치적으로 달성코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향소 복립 운동은 당초 사림파의 의도와는 크게 어긋났다. 곧 사림의 세력이 우세했던 영남 일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복립 유향소를 훈구 계열이 장악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중종대에 이르러 향촌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다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나, 이때는 성종 때와는 달리 향음주례만이 거론되었다. 이 시기의 논의에서 풍속 교화의 방법으로 향음주례와 함께 거론된 것은 향사례가 아니라 친영례(親迎禮)였다. 그 이유는 향사례 의식의 시행 주체는 유생들에 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습속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논의에서 일단 제외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성종대의 향사례, 향음주례 보급 운동이 중종대에 이르러 향촌 질서의 개선 내지 개편의 현실적 필요성이 절박해지면서 향약보급운동으로 발전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향음주례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풍속의 교화는 향약의 기본 취지로서, 향음주례와 향약이 추구하는 바는 서로 같았다. 향약의 강신례(講信禮)가 끝난 후에 향음주례를 베풀기도 하고 향음주례 후에 강신례를 베풀기도 하여 향약에서 양자는 연이어 계속적으로 열렸다. 향약과 향음주례는 선후의 차이밖에 없었으며 서로 혼칭되기도 하였다.

향음주례-서울시 강북구 우이동-강북구청

향음주례-서울시 강북구 우이동-강북구청

참고문헌

李泰鎭. 韓國社會史硏究. 知識産業社, 1986
國朝五禮儀, 禮記, 儀禮, 朝鮮王朝實錄, 周禮, 鄕飮酒禮攷證圖
金龍德. 鄕飮禮考,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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